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렉트릭 기타 (문단 편집) === 시초와 탄생 === 일렉트릭 기타의 가장 핵심적인 매커니즘인 현의 진동과 전기 신호의 연동이라는 발상 자체는 [[1890년]]에 등장하였다. [[미합중국 해군]]의 조지 브리드 (George Breed)라는 인물이 낸 '''METHOD OF AND APPARATUS FOR PRODUCING MUSICAL SOUNDS BY ELECTRICITY (전기를 이용한 음의 발생 방법과 그 장치)'''라는 특허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제시된 방식은 전기를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기타 현을 진동시키는 방식이다. 즉,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기타 현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증폭하는 일렉트릭 기타의 매커니즘과는 차이가 있다. [[https://patents.google.com/patent/US435679A/en|구글 특허 관련 페이지]]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Flying_Pan_prototype_(1931)_using_one-piece_maple.jpg|width=100%]]}}} || || {{{#White 리켄배커의 Frying Pan}}} || 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교체하는 진정한 방식의 일렉트릭 기타는 [[리켄배커]]에서 [[1931년]]에 개발한 ''''프라잉 팬 (Frying Pan)''''이라는 악기를 그 시초로 보고 있다. 프라잉 팬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동그랗고 작은 바디와 넥의 모습이 마치 기다란 프라잉 팬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악기는 아무래도 첫 생산품이라 꽤 불안정했는지 넥이 온습도 변화에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등 여러 문제가 겹쳐 [[1935년]]경 [[베이클라이트]] 재질로 된 새 버젼이 나오기도 하였다. 해당 모델은 본격적으로 양산되어 판매된 적은 없었다. 한편, [[어쿠스틱 기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음량이 작다는 고질적인 약점 때문에 대규모 공연이나 야외 무대에서의 연주가 어렵고, 다른 악기와 합주시 소리가 묻히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밴드에서 좁은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었다. 처음에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이 음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수가 [[마이크]]에 대고 노래부르듯 기타 앞에 마이크 스탠드를 갖다대는 방식으로 음량을 키웠으나[* 클래식 기타 공연은 지금도 이렇게 한다.] 기타 연주자가 마이크 앞에 머물러야 하므로 이동이 제한되고, 음량을 올리면 피드백[* 이 현상은 줄의 진동에 의한 잔향이 빠르게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기타의 울림통 내부를 계속해서 돌고, 이 소리를 다시 픽업이 흡수하는 식으로 소리가 점진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에 발생했다. 후술할 솔리드 바디 일렉트릭 기타도 기타의 픽업 부분을 연결되어있는 앰프의 스피커 유닛에 가까이 가져다 대면 비슷한 원리로 하울링이 생기기도 한다. 간혹 몇몇 앨범에서는 이 피드백 소리를 음악의 일부로써 마치 효과음이나 FX마냥 삽입하기도 하며, 고출력 앰프가 있어야지만 내기 쉽기 때문에 이 소리를 재현해주는 [[기타 이펙터]]까지 있다.]이 생기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 다음에 나온 방식은 기타 자체에 소형 마이크를 장착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동 문제에 대해 혜안이 되었지만 하울링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1934년]], 일반 어쿠스틱 기타에 마그네틱 픽업을 부착한 일렉트로 어쿠스틱 기타가 [[리켄배커]]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고, 곧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에 유명한 어쿠스틱 기타 제조업체였던 [[깁슨]]도 일렉트릭 기타 시장에 뛰어들었고 [[1936년]]에 ES-150과 ES-250을 출시한다.[* ES는 Electric Spanish의 약자고, 뒤의 숫자는 기타 가격이 150달러, 250달러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렇게 픽업이 달린 기타가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재즈]] [[기타리스트]]였던 [[찰리 크리스찬]]은 밴드에서 기타 솔로를 연주할 목적으로 처음으로 픽업이 달린 어쿠스틱 기타[* [[Gibson]]의 ES-150 모델로, 당시 픽업이 장착된 기타들은 사실상 어쿠스틱 기타에 픽업 하나만 달랑 달아놓은 수준이었다.]를 공연에 사용하였다. 이는 어찌 보면 훗날 [[로큰롤]]과 이후의 하위 장르들의 태동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그는 로큰롤이 탄생하기 한참 전인 [[1942년]]에 사망하였음에도 [[1990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